바야흐로 2020년 코로나가 발발한 후, 외국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항공사의 일방적인 비행 중단으로 인해 고국 한국으로 돌아와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취업되어 한국을 떠나 산지가 어느새 십 년.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홈트와 헬스만 하던 나는 집 근처에 모던 필라테스를 접하게 된다. 체대 선생님의 파이팅 넘치는 그룹수업으로 열심히 육 개월 동안 수련하며 필라테스에 대해 조금이나마 경험을 하고 알아갔다.
독일로 돌아왔지만 비행은 여전히 완전 복귀되지 않았고 이때당시만 해도 독일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나는 미뤄왔던 시험들과 싸우고 있었다.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밤마다 도서관에서 10시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을 훔치기를 반복하던 하루하루. 한국에서 했던 필라테스가 생각났고 그때 운동할 때만은 내 몸에 집중해야만 하는 시간이 그리웠다. 그래서 독일에서 필라테스를 다시 하기로 맘을 먹고 근처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찾기 시작했다. 이왕 값비싼 수업을 들을 바에는 (한국과 비슷하게 독일도 필라테스는 싸지 않다) 아예 강사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프랑크프루트 근처에는 클래식 필라테스 스튜디오 몇 군데밖에 없었고 교육을 직접 진행하는 곳은 한 곳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 직접 수업을 문의하고 수업을 듣기 전후로 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 모던 필라테스를 접하고 수련하며 너무 좋아서 독일에서도 필라테스에서 더 잘 알고 싶고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일단 10회를 해보며 내 몸을 알아가고 내가 또 티칭에 잘 맞는 사람인지 더 고민해 보기로 하며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클래식 필라테스 여정은 시작되었고 우리 스튜디오와 연계하여 진행했던 슈투트 가르트에 뉴욕 필라테스를 2년넘게 왔다 갔다 하며 Davorka Kulenovic 선생님께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며 자격증을 하나하나 따 나아갔다. Davorka Kenovic 선생님은 조셉필라테스의 수제자 로마나 선생님께 뉴욕에서 직접 사사한 독일의 유일한 선생님이다.

모든 수업은 영어도 아닌 독일어로 듣고 (영어도 가끔써주셨지만 독일어가 더 편하신 선생님) 시험도 독일어로 봐야 했다.
회사 독일어 시험과 현지 대학교에서 여러 시험들을 보며 독일어를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누군가를 독일어로 가르치고 몸을 움직이게끔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대학교 입학 이후 두 번째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의 독일에서의 삶은 이때까지만 해도 오기, 각오, 전쟁 등로 표현할 수 있겠다. 나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아시아인으로 그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을 기대한 다는 자체가 오산이었다. 하지만 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이 상황을 회피하거나 불평하기는 싫었다. 물론 지금도 이 나라가 힘들고 불평거리는 많다 ㅋㅋ 하지만! 예전의 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난 내 기준에 최선의 노력을 했고 이래도 안되는 것은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제까지 이 악물고 열등감에 쌓여 노력만 하고 살았던 긴장모드를 조금은 풀고 내 삶을 좀 더 긴장 없이 릴랙스 하게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필라테스 이야기를 풀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렀다.


독일에서 외국 선생님들께 여러 수업을 들으며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필라테스에 푹 빠져있던 나는 2년 동안 독일 필라테스 센터에서 일을 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잠시 반년정도 일, 운동을 쉬게 된다..
이 얘기는 담 편에 계속..!